AX의 시작은 노션과 슬랙을 없애는 데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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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의 시작은 노션과 슬랙을 없애는 데서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노션과 슬랙이 우리 회사를 운영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제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틀린 말입니다. 노션과 슬랙은 좋은 도구입니다. 문서를 같이 쓰고, 대화를 남기고, 빠르게 협업하기에는 이미 충분히 좋은 제품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모든 SaaS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범용 기능은 잘 만든 도구를 계속 쓰는 편이 더 빠르고, 싸고, 안전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노션과 슬랙을 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고객 맥락, 정책, 승인, 예외 처리, 책임 기록까지 그 안에만 묻어 두는 데 있습니다.

AI가 들어오면 이 차이가 드러납니다. 대화와 문서를 잘 찾아 요약하는 것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고객에게 무엇을 제안해도 되는지, 어떤 예외에서 멈춰야 하는지, 누가 최종 승인했는지를 알게 하려면 단순한 검색창보다 더 단단한 운영 구조가 필요합니다.


디지털 월세는 구독료만이 아니다

구독료는 눈에 보입니다. 매월 결제되는 비용이고, 좌석이 늘면 청구서도 커집니다. 하지만 진짜 비용은 종종 다른 곳에 있습니다. 같은 고객 정보를 여러 도구에 다시 입력하는 시간, 어떤 숫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 채팅과 문서와 CRM을 오가며 맥락을 복원하는 시간, 담당자가 바뀔 때 함께 사라지는 예외 처리의 기억입니다.

이 비용을 모두 “SaaS 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도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업무의 핵심 상태가 어디에 있는지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도 많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월세를 줄인다는 말은 구독료를 깎자는 말보다, 우리 회사의 업무 상태를 외부 화면 속에만 두지 말자는 말에 가깝습니다.


노션과 슬랙은 운영체계가 아니다

노션은 문서를 잘 다룹니다. 슬랙은 대화를 잘 다룹니다. 하지만 회사가 실제로 운영하는 것은 문서나 대화 자체가 아닙니다.

  • 어떤 고객에게 어떤 조건으로 제안할 것인가.

  • 어떤 할인과 예외는 허용되고, 누가 승인해야 하는가.

  • 어떤 데이터는 누구에게 보이고, 얼마나 오래 보관되는가.

  • AI가 초안을 넘어 실제 행동을 하려면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

  •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을 근거로 누가 결정했는가.

이 질문의 답은 대화 스레드 한 줄이나 문서 페이지 하나에 남아서는 안 됩니다. 고객, 정책, 권한, 승인, 감사 기록이라는 구조로 남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바뀌어도 회사가 기억하고, AI가 일을 도와도 판단의 근거를 잃지 않습니다.


카카오가 보여주는 더 깊은 층위

카카오의 '탈 오라클' 사례는 이 문제를 더 깊은 인프라 층위에서 보여줍니다.
(오라클: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시장의 오랜 1위 상용 제품)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카카오는 2019년 상반기 '글리제 프로젝트'를 시작해, 2021년 하반기부터 그룹 내 100여 개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를 MySQL·PostgreSQL·EDB·MongoDB 등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한 제품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완료해 나갔습니다. 이후 남은 계열사 서비스도 순차 전환이 진행됐고, 2025년 말 오라클 관련 유지보수와 기술지원이 종료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 내용은 카카오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카카오 측 확인이 인용된 언론 보도이며, 일부 서비스는 아직 전환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전자신문 보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용 제품을 버리고 모든 것을 직접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카카오는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기반 기술은 그대로 가져다 쓰되,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복구하는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방법, 누가 무엇을 건드릴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어떤 방식으로 굴릴지에 대한 통제력을 회사 안으로 가져왔다는 데 있습니다.

카카오가 공개된 오픈소스 도구인 MySQL Orchestrator를 그대로 쓰지 않고, 서버 한 대가 고장 나도 서비스가 멈추지 않게 하는 자사만의 운영 표준을 직접 만들어 기술 블로그에 공개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같은 규칙이라도 남이 정한 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정한 대로 갖겠다는 뜻입니다. 카카오 기술 블로그 – MySQL Orchestrator 기반의 새로운 HA 표준 개발기

노션과 슬랙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션을 복제하거나 슬랙 같은 채팅 앱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고객의 맥락, 업무의 상태, 정책의 규칙, 승인과 감사의 흔적은 우리 회사가 읽고 바꾸고 설명할 수 있는 구조로 가져와야 합니다.


회사가 직접 가져와야 할 것은 다섯 가지다

1. 고객 맥락

누가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약속받았고,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입니다. 문서와 채팅에 흩어진 고객 기억을 하나의 업무 단위로 묶어야 합니다.

2. 정책

할인, 환불, 견적, 품질, 정산처럼 회사가 반복해서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정책이 특정 담당자의 기억이나 메시지 검색에 의존하면 AI는 도움을 줄 수 있어도 안정적으로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3. 권한

누가 무엇을 보고, 수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지입니다. AI가 여러 시스템을 가로지를수록 권한은 더 이상 부가 기능이 아니라 운영의 경계가 됩니다.

4. 승인

AI가 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이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을 나누는 구조입니다. 좋은 자동화는 사람을 없애는 자동화가 아니라, 사람이 판단해야 할 지점을 선명하게 만드는 자동화입니다.

5. 감사 기록

무엇을 근거로 어떤 결정을 했는지 다시 설명할 수 있는 흔적입니다. AI 시대에는 답변보다 “그 답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실행됐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답은 하이브리드다

가장 현실적인 구조는 세 층입니다.

  • 빌리는 층: 이메일, 일정, 문서 편집, 채팅, 범용 협업처럼 시장이 이미 잘 해결한 기능

  • 직접 갖는 층: 고객 데이터, 업무 상태, 정책, 권한, 승인, 감사 기록처럼 우리 회사의 차별화와 책임이 쌓이는 구조

  • 연결하는 층: 내부의 판단과 상태를 외부 도구·ERP·CRM·AI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API와 워크플로우

이 구조에서 노션과 슬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편해집니다. 사람들이 익숙한 화면에서 대화하고 문서를 쓰되, 중요한 판단은 더 이상 대화의 흐름 속에 묻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내부화해야 할까

모든 업무를 자체화하면 회사는 또 하나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게 됩니다. 로그인, 검색, 모바일, 보안, 백업, 장애 대응, 리포팅을 모두 따라가다 보면 정작 고객에게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부화는 다음 네 질문에 동시에 “예”라고 답하는 업무에서만 검토하는 편이 좋습니다.

  • 이 업무는 자주 반복되고, 규칙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가.

  • 처리 속도와 정확도가 고객 경험이나 경쟁력에 직접 연결되는가.

  • 고객 데이터, 규제, 감사, 권한 통제가 중요한가.

  • AI가 나중에 검색을 넘어 추천·초안·실행까지 맡을 가능성이 있는가.

네 질문 중 하나라도 약하다면, 더 좋은 SaaS를 쓰거나 가볍게 연결하는 편이 낫습니다. 반대로 네 질문이 모두 강하다면 그 업무는 단순한 앱 기능이 아니라 회사의 운영 자산일 가능성이 큽니다.


AX는 도구 교체가 아니라 운영권 회수다

AX는 노션을 자체 위키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슬랙을 자체 메신저로 바꾸는 프로젝트도 아닙니다.

AX는 회사가 자기 일을 어떤 데이터 단위로 기억할지, 어떤 정책으로 판단할지, AI에게 어디까지 맡길지, 어떤 행동은 반드시 사람이 승인할지를 다시 정하는 일입니다.

도구는 빌려도 됩니다. 하지만 고객 맥락, 정책, 권한, 승인, 감사라는 핵심 운영권까지 빌려서는 안 됩니다.

노션과 슬랙을 계속 써도 됩니다. 다만 그 안에 우리 회사의 운영체계가 갇혀 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디지털 월세를 줄이는 진짜 의미이고, AX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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